추운 겨울날,
포장마차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에
손을 녹이던 기억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먹는 이 어묵,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어묵의 국적은 어디일까요?
어묵의 원조를 찾아가면 일본의 '오뎅'에 닿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어묵을 '가마보코(蒲鉾)'라고 부르며,
이는 14세기 무렵부터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선을 으깨어 반죽한 후,
대나무 꼬치에 감아 구워낸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탕에 넣거나 튀겨 먹는 방식으로 퍼졌고,
'오뎅'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의 편의점에서 겨울철이면 등장하는 오뎅 코너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어묵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왔습니다.
한국에 어묵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알려져 있지만,
그 뿌리는 훨씬 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단순히 수입된 음식이 아닌,
한국식 입맛에 맞게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왔습니다.
특히 부산은 한국 어묵의 중심지로 불립니다.
전쟁 이후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한 창의적인 음식들이 생겨났고,
어묵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생선을 갈아 만든 반죽에 밀가루를 섞고,
다양한 채소와 양념을 더해 튀겨내는 한국식 어묵은
일본의 오뎅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얇고 바삭하게 튀긴 어묵부터
두툼하고 쫄깃한 사각 어묵까지, 종류도 풍부해졌습니다.
부산 국제시장이나 자갈치시장에 가면
수십 가지의 어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매운 소스에 찍어 먹는 고추어묵,
치즈를 넣은 어묵, 깻잎으로 감싼 어묵 등,
다양한 변주를 거치며 한국식 어묵은 진화해왔습니다.
이렇듯 한국의 어묵은 더 이상 일본의 그림자 속에 있는 음식이 아니라,
독립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진 간식이자 반찬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묵은 단지 겨울 간식만은 아닙니다.
도시락 반찬, 국물 요리, 떡볶이의 파트너 등,
사계절 내내 활용되는 친숙한 식재료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조리도 쉬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음식입니다.
동시에, 과거의 기억과 정서를 자극하는 '감성의 음식'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어묵의 글로벌화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한류와 함께 한국식 어묵이 해외 시장에 소개되며,
일본식 오뎅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튀기거나 구운 어묵은 물론,
냉동 포장 제품도 다양하게 개발되어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젠 어묵도 K-푸드의 일원이 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묵의 국적은 어디입니까?
그 답은 어쩌면 단 하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어묵이 한국에서 새로운 이름과 맛,
감성을 덧입으며 다시 태어난 것처럼,
음식은 국적보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 저녁, 어묵탕 한 그릇 앞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뜨거운 국물에 담긴 그 맛이 어디서 왔든,
결국 우리 마음에 남는 건 따뜻한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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