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의 역습 – 발효된 바다의 힘
젓갈은 냄새부터 강렬합니다.
한 번 맛을 보면 머릿속을 잊지 못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만으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요.
하지만 그 강렬한 향 뒤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젓갈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지혜, 그리고 문화의 발효물입니다.
젓갈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젓갈의 형태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의 고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생선을 소금에 절여
장기 보관하는 방식으로 젓갈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리법이 아닌
자연을 극복하는 생존 기술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젓갈의 역사는 깊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젓갈은 한식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특히 김치를 만들 때 빠질 수 없는
재료인 새우젓이나 멸치젓, 황석어젓은
그 자체로 반찬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음식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핵심 조미료 역할도 해왔습니다.
발효의 마법은 단순히 맛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생선이나 해산물에 소금을 치고,
시간이 흐르며 미생물이 작용하면서
단백질이 분해되고, 특유의 풍미와 영양이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젓갈만의 매력, ‘썩은 듯 깊은 맛’입니다.
이런 발효식품은 한국만의 문화가 아닙니다.
동남아시아의 ‘남쁠라(태국)’, ‘눅맘(베트남)’,
이탈리아의 ‘콜라투라 디 알리치(멸치젓 액체)’,
고대 로마의 ‘가룸(garum)’ 등,
세계 각지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젓갈을 만들어왔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발효식품은 모두 냄새는 강하고 외면당하기 쉽지만,
음식에 넣었을 때 깊은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로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냄새는 싫지만 맛은 좋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안고 젓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젓갈이 단지 밥도둑이 아니라 문화의 일부였습니다.
제주도에서는 고기보다도 비싼 자리돔젓,
전라도에서는 감칠맛의 극치를 보여주는 굴젓과 창란젓,
충청도에서는 토하젓처럼
민물 새우를 활용한 지역 특색 젓갈이 존재합니다.
또한, 예전에는 시집가는 딸을 위해 친정어머니가 손수 담가준 젓갈이
혼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네가 외로울 때, 이 젓갈 하나면 밥은 넘길 수 있을게야…”
그 말 한마디에 어머니의 사랑과
시대의 눈물이 함께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냉장고와 냉동기술 덕분에
젓갈 없이도 얼마든지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젓갈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입맛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기억, 전통,
그리고 바다의 냄새를 우리가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냄새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한 입 먹으면 깊은 감동이 밀려오는 젓갈.
그것은 그저 썩은 생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다가 발효시킨 시간,
그 자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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