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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터 전쟁: 식탁 위의 권력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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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빵에 발라먹는 평범한 버터.
하지만 이 조용한 노란 덩어리는 한때 세계 각국의 식탁과 정치, 그리고 국민의 식생활을 뒤흔든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른바 “버터 전쟁”이라 불리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음식 싸움을 넘어, 정체성과 권력의 상징이었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프랑스, 버터의 나라

프랑스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버터 애호 국가입니다.
빵과 함께 곁들이는 크루아상, 고소한 베이커리의 풍미,
심지어 요리에서 쓰는 기름조차 올리브유 대신 버터를 사용하는 것이 이들의 자부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마다 ‘버터의 기준’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우유에서 버터를 만들 때 지방 함량이 82% 이상이어야만 “진짜 버터”라고 인정했습니다.
반면 독일, 영국 등은 80%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소한 2% 차이가 유럽 연합 내에서 무역 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프랑스는 자국의 고품질 버터가 정체성을 지킨다며 맞섰고,
다른 국가는 “그건 니네 기준일 뿐”이라며 반발했습니다.

 

 

◈마가린은 적인가, 대체품인가

20세기 초, 마가린의 등장은 버터를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마가린은 식물성 기름을 고체화해 만든 것으로, 보관이 쉽고 가격이 저렴했으며
전쟁과 경제 위기 속에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특히 노르망디 지방의 낙농업자들과 버터 생산업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가린이 버터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마가린을 팔 때 반드시 “이것은 버터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크게 써야만 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가린의 판매 자체를 규제하거나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냉장고와의 전쟁

20세기 중반, 가정용 냉장고의 보급은 버터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냉장 보관이 어려웠던 시대에는 마가린이 유리했지만,
이제 냉장고의 보급으로 버터가 다시금 식탁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가린은 그 저렴함과 실용성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버터는 점점 "고급 식재료", 혹은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 🇰🇷 한국의 버터는 언제 시작됐을까?

한국에 버터가 들어온 것은 조선 말기,
근대화 물결과 함께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960~70년대, 학교 급식과 제과점 문화가 확산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버터는 부잣집 식탁에나 오를 수 있는 귀한 재료였으며,
이후 1980년대 마가린과 함께 일반 가정에도 점점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의 작은 전쟁은 계속된다

오늘날 버터는 단순한 유제품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문화, 경제, 생산자의 땀과 자존심이 녹아든 음식입니다.
우리가 사 먹는 작은 버터 한 조각 안에는
수십 년간 이어진 식문화의 자존심과 생존 경쟁의 역사가 담겨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 누군가 “버터 먹을래, 마가린 먹을래?”라고 묻는다면,
단순한 취향 싸움이 아니라, 식탁 위에서 벌어졌던 진짜 전쟁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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